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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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2-20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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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2윌 20일 결성한 민족자주연맹(民族自主聯盟)이 제기한 남북 지도자 회담에 동의하여 남북 협상의 길을 열어간 것이다.
1946년 후반부터 전국에서 폭력과 폭동이 난무하더니 1947년 7월 19일에는 근로 인민당의 여운형이, 12월 2일에는 한국 민주당의 장덕수가 암살당한 비극이 연출되어. 이러한 비극은 통일 政府(정부) 수립으로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백범은 전망하였다. 1월 8일에 입국한 유엔 한국위원단의 입북을 소련 측이 거절하자 미군정과 이승만과 한민당이 합작하여 단정 수립을 추진하였다.
미국은 이승만의 단정안을 지원하였다. 이승만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문제를 유엔에 상정시켜 11월 14일 한국 총선거안을 가결하였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하였다. 아니면 민족의 대참 극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백범이었다.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글입니다.
1948년은 연초부터 단독 政府(정부) 수립 안이 기세를 올렸다.
1월 27일 : 김구 김규식. 유엔한국위원단 면담에서 단독선거 반대
2월 03일 : 이승만, 단독선거 촉구 성명(이승만. 단독선거를 위한 다양한 교섭에 2월 26일 유엔한국위원단 메논 위원장의 보고를 심의한 유엔소총회가 단선을 결의했고, 3월 1일 하지 사령관이 단선 실시를 발표)
2월 04일 : 김구 김규식, 남북협상에 합의
2월 10일 : 김구, `삼천만 동포에 읍고함` 의 단독 政府(정부) 수립 반대 성령
2월 16일 : 김구 김규식, 북측의 김일성 김두봉에게 남북 협상 제의
2월 27일 : 김규식을 비롯한 단선 반대자 20여명 입법 의원 탈퇴
3월 12일 : 김구 김규식 김창숙 조소앙…(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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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때의 일은 복잡하므로 간추린 일지를 통해 보기로 한다.
백범은 총선거안에 반대할 이유는 없었지만 단독 政府(정부)로 몰고 갈 것을 막기 위해 12월 22일 남한 단독 政府(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후 통일 政府(정부) 수립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경주하였다. 대참 극이란 말할 것도 없이 6.25와 같은 것을 말한다.한국근현대사-김구 , 한국근현대사인문사회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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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글입니다. 이에 대하여 백범은 김규식과 합작하여 단정 반대 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