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변지관(邊地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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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1-07 05:2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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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변지관(邊地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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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에 들어서서도 영고탑 회귀설은 여전히 맹위를 떨쳤지만, 퇴각하게 될 청의 경로는 평안도 강변칠읍과 함경도 삼수·갑산과 육진지역으로 좁혀져 있었다. 대신 17세기말 이래로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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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에는 과거에 변지로 여겨졌던 서남 연해·도서지역중 일부가 더 이상 변지로 간주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호란 이후 조선은 이제 청이 오랑캐국가라는 그들의 숙명으로 인해 멀지 않은 장래에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퇴각할 청과의 일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숙종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청의 예상 경로에는 양덕-맹산의 평안도 내륙지역과 함경도 전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신 17세기말 이래로 황해·경기·충청 등 서해 연해·도서지역에서의 해방체제 구축문제가 새로운 과제(problem)로 떠오르면서 이곳이 변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스타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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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에는 과거에 변지로 여겨졌던 서남 연해·도서지역중 일부가 더 이상 변지로 간주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호란 이후 국가의 방어태세는 서북지역으로 모아졌고, 그곳에서 변지의 범위는 점차 구체적으로 적용되기 스타트했다. 이것은 적유령산맥 중심의 방어체제를 공고히 하고 의주대로에 방어용 수목지대를 조성한 결과였다. 예상된 방어선을 중심으로 서북지역은 변지와 내지로…(省略)
영조대에는 과거에 변지로 여겨졌던 서남 연해·도서지역중 일부가 더 이상 변지로 간주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