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목민심서에 대한 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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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0-2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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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 배천(白川)에서 살다가 조선왕조를 세울 무렵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고조의 이름은 도태(道泰), 증조의 이름은 항신(恒愼), 조부의 이름은 지해(志諧), 오직 증조만이 진사였다. 정씨 집안의 본관은 나주(螺舟 : 押海)다. 소생으로 큰아들 약현(若鉉)이 있다 둘째 부…(투비컨티뉴드 )






본 資料는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을 알아보고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 대해 작성된 리포트입니다. 당시로는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초부면(草阜面) 마재(馬峴)이고,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아버지 정재원은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음사; 蔭仕)로 벼슬에 나갔다.정약용과 목민심서에 대한 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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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는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을 알아보고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 대해 작성된 리포트입니다. 정약용의 고조부, 증조부, 조부의 3대는 벼슬에 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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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다. 맨처음 벼슬을 한 선조는 승문원(承文院) 교리를 지낸 자급(子伋)으로 이때부터 쭉 이어져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수강(壽崗), 병조 판서 옥형(玉亨), 의정부 좌찬성 응두(應斗), 사헌부 대사헌 윤복(胤福), 강원도 관찰사 호선(好善), 홍문관 교리 언벽(彦璧), 병조 참의를 지낸 시윤(時潤)은 모두 옥당(玉堂)에 들어갔었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유명하다. 태어난 곳은 한강 강변 마현 마을이다. 외가는 해남 윤씨, 학문과 예술의 집안 어머니는 숙인(淑人) 해남 윤씨(海南 尹氏)로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의 후손이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였다.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고, 조정에 들어와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 목사(晉州牧使)까지 지냈다. 아버지 정재원은 세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의 10남매가 있었다.정약용과목민심서에대한소론 , 정약용과 목민심서에 대한 소론인문사회레포트 ,
Ⅰ. 다산 정약용의 생애
1. 출생과 가족관계
2. 성장기와 청년기
3. 벼슬시절
4. 유배시절
5. 만년
Ⅱ. 다산 정약용의 사상
Ⅲ. 牧民心書의 내용 및 구성
1. 구성
2. 저작목적
3. 내용
Ⅳ. 小論
Ⅰ. 다산 정약용의 생애
1. 출생과 가족관계
다산 정약용은 1762년(임오년, 영조38년) 음력 6월 16일, 아버지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5대조 정시윤은 만년에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근처인 ‘마재’에 터를 잡아 은거했다. 첫 부인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남씨(宜寧 南氏: 1729-1752)이다.